심학산 아래 서패동에는 ‘돌곶이’라 불리는 마을이 있다. 예전에는 이 마을에서 꽃축제를 열었다고 하는데,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왜 이 마을 이름이 하필 ‘돌곶이’일까 궁금해져 인터넷을 검색해 보았다.
알고 보니, 마을 곳곳에 돌이 많아 ‘돌곶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이 마을의 동쪽으로는 심학산이 자리하고 있는데, 해발 200m도 되지 않는 야트막한 산이지만 남녀노소 누구나 오를 수 있는 산이다. 그런데도 정상에 올라서면 믿기 어려울 만큼 탁 트인 풍경이 펼쳐진다. 동쪽으로는 일산신도시와 서울 강서구, 서쪽으로는 김포신도시와 한강, 임진강이 서해로 흘러드는 장관이 눈 앞에 펼쳐지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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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조전망대에서 바라본 출판단지 |
풍수지리적으로도 심학산은 좋은 기운을 가진 전국 20대 명산 중 하나로 꼽힌다. 이곳에는 투구 모양의 ‘수투바위’, 매 모양의 ‘매바위’, 두꺼비를 닮은 ‘두꺼비 바위’ 등 다양한 전설을 품은 바위들이 곳곳에 흩어져 있다.
마을에서 조금만 오르면 크지는 않지만, 바위들이 많이 보이는데, 그저 우연히 있는 것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혹시 수천 년 전 비가 많이 와서 산에서 굴러 내려왔거나, 고인돌을 옮기던 중 빠지거나 미처 쓰지 못하고 남겨진 것 아닐까 하는 우스운 상상도 해보게 된다.
내가 교하지역의 고인돌에 관심을 끌게 된 이유는, 고인돌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곳이 예로부터 사람들이 살아가기 좋은 터전이었음을 말해주는 단서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는 고인돌이 정작 지역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도 아쉬움으로 다가왔다.
현재 파주 운정신도시로 불리는 지역은 과거 교하읍에 해당한다. 고인돌이 있다는 것은 이 지역이 예로부터 사람이 살기 좋은 곳이었다는 증거다. 선사시대 사람들은 한강, 임진강, 공릉천이 만나는 비옥한 교하지역에서 농사를 짓고, 얕은 구릉에서는 수렵과 채집을 하며 살아갔다. 그들의 삶의 흔적은 지금도 교하 곳곳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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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하리 고인돌 |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다율리와 당하리 고인돌이 있으며, 이와 관련해 ‘상석리(上支石里)’와 ‘하지석리(下支石里)’라는 지명도 전해 내려온다. 이는 고인돌이 그만큼 많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만약 이 일대를 정밀히 조사한다면 더 많은 고인돌 유적이 발견될 가능성이 크다.
1965년 국립중앙박물관 보고서에 따르면, 다율리·당하리·교하리 일대, 즉 옛 교하중학교 주변에는 106기의 고인돌(支石墓)이 분포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1988년 군부대의 군사시설 공사로 다수가 파괴되고 현재는 25기만 남아있다. 경기도는 이 가운데 6기를 지방문화재로 지정하고, 1993년 한양대학교와 한국선사문화연구소에 의뢰하여 16기에 대해 발굴조사를 진행하였다. 이 조사에서는 고인돌 8기와 주거지 1기가 확인되었다.
그러나 당하리 고인돌 대부분은 원래 자리를 벗어나 다른 지역으로 옮겨졌다. 실제로 다율리와 당하리에서 발견된 고인돌 일부는 현재 조리읍 봉일천 장곡체육공원, 파주읍 봉서리 통일공원 등에 조경용으로 설치되어 있으며, 충남 온양민속박물관 야외전시장에도 3기가 옮겨져 있는 것이 확인됐다.
교하중학교 출신으로 현재 교하우체국장인 김경배 씨는 “1980년대 초, 중학교 시절 군인들이 트럭과 크레인을 가져와 교하중 후문 쪽에서 큰 돌들을 트럭에 싣는 것을 봤다”라고 증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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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봄 교하동주민자치위원들이 고인돌을 살펴보고 있다. |
이처럼 사라지고 잊혀 가는 교하의 고인돌이지만, 지역주민들과 학생들 사이에서 고인돌을 보존하고 알리려는 인식이 점점 퍼지고 있다. 교하동 주민자치회(회장 박영호)는 교하지역의 대표적인 청동기 유적인 고인돌을 보존하고 홍보하기 위한 활동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지난 3월, 고인돌 산림공원에서 만난 교하고등학교 역사담당 고경현 선생님은 “교하의 소중한 문화유산인 고인돌을 널리 알리고 싶어 동아리 학생들과 함께 고인돌 탐방수업을 하고 있다”라며, “전시공간, 설명시설, 주차장 등을 갖추어 주민들의 접근성을 높이고 고인돌의 가치를 알릴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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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희 파주지역역 문화연구소장 ▲사진 서울신문 인용 |
이윤희 파주지역 문화연구소장은 “고인돌 유적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가 인정되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소중한 문화유산”이라며, “우리나라에서는 고창, 화순, 강화 고인돌만이 등재되었지만, 파주지역은 한강 이북 최대 고인돌 밀집 지역으로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충분히 가치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또한 “지금이라도 고인돌 유적에 대한 전수 조사와 보존대책, 문화재지정 추진이 시급히 이루어져야 한다”며, “이미 조선왕릉 40기 중 4기를 보유한 파주가 또 하나의 세계문화유산을 갖게 된다면 고품격 문화도시로서의 위상과 자긍심을 갖추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