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집 없는 집
  • 집2
  • 집2
    - 집 없는 집

    사람만 집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동물에게도 집이 필요하다. 그들은, 집이라는 울에서 대를 이을 새끼를 번식만 하고는 창공을 활공하는 영혼이 자유로운 로맨티스트들이다.
     문산 집에서 2번의 물난리를 겪고 임진리 우거(寓居)로 이사한지도 어느 덧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주목나무에는 뾰족한 알프스지붕처럼 아름답게 푸른 칠을 한 새집을 두체나 매어달았다. 집세 없이 봄이면 간드러지게 노래하는 박새, 곤줄박이, 동고비들에게 빌려줄 집이다. 그런데 아직까지 한 마리도 들지 않아 빈집으로 낡아버렸다. 요놈들은 그럴듯하게 사람이 지어놓은 집보다 자신들이 온갖 짚 풀이며 나뭇잎들로 지은 집을 좋아하나보다.

     이때 송기흥 시인의 “집에 대하여” 시가 불현 듯 떠오르면서 생각이 맑아진다.

         곤줄박인가, 한 마리 푸드득
         날아오른 자리 슬며시 헤치자
         푸나무서리 둥지 하나 숨어있다.
         마른 지풀이며 잔가지 보득솔잎으로
         얼기설기 정교하게 지은 집 한 체,
         함박꽃잎 낱낱 같은 알껍질들만
         남은 자리 아직 따듯하지만, 누구나
         자기를 벗어버리고픈 집이 한 체 있지
         산길에 잠시 앉아 에멜무지로
         내가 두고 온 집의 매무새를 본다
         일정한 넓이와 높이의 벽면에 그려온
         곰팡이 핀 詩畵가 얼룩얼룩 걸려 있다
         까맣게 눌은 자국도 선명한 바닥엔 
         늘 때늦은 사랑과 불콰한 추억의 가구들,
         찬찬히 들여다보면 바람벽 튼 틈새로
         비명을 지르는 외풍의 세월,
         눈비에 굽은 팔다리로 일구어온
         뜨락의 나무와 작은 꽃밭까지도
         꽃 피고 꽃 지는 일의 자승자박처럼
         나를 거두는 하나씩의 빗장이었다
         자꾸만 천장이 내려앉은 감옥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머리를 부딛는 새들,
         내가 박아온 주춧돌과 기둥과 門들로부터
         자유로운 하늘에 새들을 풀어놓을 땐
         내가 가 닿을 누군가는 나를 기다릴까
         허리를 펴고 다시 산길을 걷는다. 어쩌면
         나는 지금 누구의 집에 잠시 세 들어
         사는지도 모른다는 생각 찰나에
         붉은뺨멧샌가, 아까 그 둥지로
         다시 포르릉 날아들 건 뭐람! 

     우거(寓居)의 마당, 나무와 나무사이 벽과 벽 사이 엔 빈틈없이 거미줄로 촘촘하다. 빈집처럼 느껴지는 으스스한 집 뜰을 이웃과 가족들의 시선이 곱지 않다. 앞 집 사내, “저기 거미줄이 있네. 거미줄 좀 봐!” 호들갑이다. 언제부터인지 거미줄을 거두지 않고 아침햇살에 반짝이는 은사(銀絲) 위에 자신을 숨기고 유령처럼 사냥의 기회를 엿보는 거미집을 거두지 않고 있다. 잠자리며 모기파리하루살이들이 제물이 되는 것을 즐기는 기이함이 있다. 
     시시남은 으스스하고 의뭉한 시선으로 한 편의 말 틀을 짜내고 있다.

         천사초대장(天蛇招待狀)/sisinam   

         천사(天蛇,거미)가 허공에 그린 초대장이 의뭉스럽다
         얼굴 없이 은실로 짠 마법융단 위에
         초대 받은 노랑나비가 휘휘찬찬 옭혀있다
         마법의 융단을 짜는 광경을 아무도 보지 못했으니
         암흑에서 달빛을
         모사했다는 설도 있고
         암흑에서 별빛을
         모사 했다는 설도 있다
         초대장 무늬는 수메르인들의 쐐기문자
         어째서 아름다운 것들은 신비스런 눈부신 덫일까
         마법으로 짠 융단 위로 달빛을 걸고 별빛도 걸린
         신비스러운 초대장은 
         눈부신 함정이다
         알면서도 의뭉한 초대에 응하여 
         춤추는 노랑나비가
         나 일 것이라는 설도 있고
         너 일 것이라는 설도 있다                                 

     엄마가 없는 적적한 집에서 어둠이 깊도록 애달프게 빨리 엄마를 기다리는 기형도의 <엄마생각>이 불현 듯 떠올라 깡그리 잊고 있었던 엄마를 생각나게 한다.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 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사이로 고요한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훌쩍 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 시울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asistch@hanmail.net
  • 글쓴날 : [21-12-28 00:46]
    • admin 기자[null]
    • 다른기사보기 admin 기자의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