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4일, 경기도 파주 임진각 ‘쌍둥이 소녀상’ 앞에서 ‘세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기념행사가 엄숙히 개최됐다. 광복 80주년이자,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세상에 처음 증언한 故(고) 김학순 할머니의 용기 있는 외침이 34주년을 맞이한 이날, 습하고 무더운 날씨속에서도 시민들과 청소년, 정치·사회계 인사들이 자리를 함께하며 기억과 연대의 의미를 되새겼다.
기림의 날은 지난 1991년, 故(고) 김학순 할머니가 일본군 성노예 피해 사실을 처음으로 공개 증언한 날을 기념하며 제정됐다. 그의 증언은 국제사회에 일본의 전쟁범죄를 알리는 결정적 전환점이 되었고, 이후 2012년 아시아연대회의를 통해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로 지정, 한국은 2017년부터 이를 국가기념일로 제정해 매년 추모와 다짐의 자리를 이어오고 있다.
이번 행사는 ‘통일로 가는 평화의 소녀상’(대표 김순현 ) 주관으로 진행됐으며, 임진각에 자리한 ‘쌍둥이 소녀상’ 앞에서 다양한 추모와 체험 프로그램, 전시와 공연으로 이어졌다.
“소녀야, 고향 가자” – 시민이 만든 역사, 소녀상이 지킨 기억
임진각의 ‘쌍둥이 소녀상’은 2019년 4·27 판문점 선언 1주년을 기념해 제막됐다. 1,700여 명의 시민이 자발적으로 모은 7천만 원으로 제작된 이 조형물은 단순한 예술작품이 아닌, 분단과 전쟁을 넘어 평화와 화해를 꿈꾸는 시대적 의지를 담고 있다. 조각가 김운성·김서경 부부가 제작한 이 소녀상은 “소녀야, 고향 가자”라는 메시지를 품고 있으며, 한 기는 현재 임진각에, 또 다른 한 기는 향후 북측에 전달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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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현 공동대표가 기림의 날 개회사를 하고 있다. |
김순현 통일로가는평화의소녀상 대표는 개회사를 통해 “소녀상 곳곳에 돌 맞은 자국이 있다. 일장기를 들고 매춘부라 욕하는 사람들도 있다”며 “지켜주지 못한 국가를 부끄러워해야지, 왜 소녀에게 돌을 던지나. 우리는 꺾이지 않는다. 끝내 이길 것”이라며 강한 의지를 밝혔다.
미래 세대가 잇는 기억 – 평화를 향한 작은 손들의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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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정청소년문화의집 역사 동아리 ‘역지간g’ 소속 학생들은 평화 메시지를 담은 종이비행기 접기, 나비 타투 스티커 체험, 위안부 인식 조사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피해자들의 아픔을 기억하고 평화를 향한 메시지를 전했다. |
이번 행사에서는 청소년들의 주도적 참여가 돋보였다. 운정청소년문화의집 역사 동아리 ‘역지간g’ 소속 학생들은 종이비행기에 메시지 쓰기 안내, 나비 타투 스티커 체험, 위안부 인식 조사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피해자들의 아픔을 기억하고 평화를 향한 메시지를 전했다. 체험 행사 참여자들도 그들의 용기를 잊지 않겠다는 약속과 두 번 다시 같은 역사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담아 손과 손목, 뺨 등에 꽃과 나비 등의 문양을 새겼다.
또한, 행사장 한편에서는 ‘위안부 할머니 34인의 초상전’이 마련돼, 故(고) 김학순 할머니를 비롯한 생존 피해자들의 삶과 용기를 조명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이 전시는 참가자들로 하여금 단지 ‘역사의 피해자’가 아닌, 자신의 삶을 용기로 마주했던 인물들을 직접 마주하게 했다.
정치·사회계 인사들, 정의와 평화를 향한 연대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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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후덕 국회의원이 축사를 하고 있다. |
기념식에는 윤후덕 국회의원, 최병갑 파주시 부시장, 박대성 파주시의회 의장, 이용욱 경기도의원, 이성철·최유각·박은주·손성익 시의원을 비롯해 각계 지역 인사들이 참석해 헌화와 축사를 통해 피해자들을 추모하고 기억했다.
윤후덕 국회의원은 “ 故(고) 길원옥 할머니는 예쁜 노란 나비가 되어 고향으로 날아가셨을 것”이라며, “분단의 고통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우리는 진실과 정의를 끝까지 지키겠다는 다짐을 다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병갑 파주시 부시장은 “광복 80년이 지났지만 피해자들의 상처는 여전히 현재형이다. 오늘의 기억이 다음 세대에 올바르게 계승되길 바란다”며, “여성을 향한 성폭력과 인권 침해는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침묵하지 말고 행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성화 파주여성민우회 대표는 “전쟁과 국가폭력 속 여성의 고통은 너무도 쉽게 지워졌다”며, “침묵을 깨고 행동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또 다른 비극을 막는 힘”이라고 강조했다.
기억, 저항, 평화 – 그리고 희망의 길
기념식은 파주4.16중창단의 추모 공연, 소녀상 헌화, 종이비행기 날리기 행사로 마무리됐다. 참가자들은 “돌을 맞아도 꺾이지 않는 소녀상처럼, 우리는 기억과 저항, 평화의 길을 끝까지 걷겠다”는 마음을 모아 하늘로 비행기를 띄웠다.
임진각의 ‘쌍둥이 소녀상’ 앞에서 열린 이 날의 기념행사는 단지 과거를 돌아보는 자리를 넘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를 묻는 자리였다. 故(고)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이 그랬듯이, 기억은 행동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새로운 역사를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