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0년의 침묵 깨고… 파주읍에서 드러난 ‘박태보 마애선정비’
  • 제보로 드러난 파주의 역사적 보물… 조속한 보호 조치 필요
  • 파주시 파주읍 광탄천로의 한 도로변 암벽에서 조선시대 명관으로 꼽히는 파주목사 박태보(朴泰輔, 1654~1689)의 선정을 기린 마애선정비(磨崖善政碑) 발견되었다.

    이 마애비는 박태보의 선정을 기리며 “牧使朴公泰輔萬世不忘(목사 박공태보 만세불망)”이라는 글귀가 새겨진 것으로 추정되어, 조선 후기 파주가 낳은 인물과 그 정치적 발자취를 보여주는 귀중한 사료로 주목받고 있다.

     

    “400년을 살아온 터에서 나온 역사”… 지역 원주민의 제보로 드러나

    이번 마애비의 발견은 광탄에 400년 이상 뿌리를 두고 살아온 원주민 이경성 씨의 제보에서 시작됐다. 이씨는 도로 확장 공사로 토사가 밀려드는 과정에서 명문 일부가 드러나자 즉시 북파주발전포럼 김순현 상임대표, 파주에서신문 한기황 이사장, 파주문화원 정헌식 부원장에게 알렸다.

    지난 8월 17일, 이들 세 명이 현장을 직접 확인하고 토사를 걷어내자 바위에 새긴 각자(刻字)가 드러났다. 다음날에는 차문성 파주문화원 부설 파주학 연구소장과 파주문화원 관계자도 현장에 도착해 그 가치를 검토하고, 정식 보고서가 작성되었다.


    김순현 북파주발전포럼 대표가  마애선정비를 가리키고 있다
    김순현 북파주발전포럼 대표가 마애선정비를 가리키고 있다.
     

    “박태보 목사(牧使)를 만세토록 잊지 않겠다”

    현장에 새겨진 명문은 “牧使朴公泰輔□世□忘”으로, 일부 글자의 획이 떨어져 나갔으나 전문가들은 이를 “牧使朴公泰輔萬世不忘”으로 판독했다. 이는 “박태보 목사를 만세토록 잊지 않겠다”는 뜻으로, 선정비(善政碑)의 전형적 표현이다.

    박태보는 실학자 박세당의 아들로 이천현감, 이조좌랑, 암행어사 등을 거쳐 1687년 파주목사로 부임했다. 교하현의 파주목 통합과 환곡 문제 등 지역 현안을 원만하게 해결하며 민심을 얻었고, 모친이 파주에 거주하고 있어 자진해 파주목사를 맡은 일화도 있다.

    그러나 1689년 기사환국으로 인현왕후가 폐위되자 이에 반대 상소를 올렸다가 국문을 당하고, 귀양길 도중 노량진에서 사망한 절의의 관료이기도 하다. 사망 당시 직첩은 반환되었으나 신원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1694년 갑술환국 이후에야 신원 및 증직되었다.

     

    1694년 각석 가능성 높아… "마애로 세운 이유는 정치·경제적 고려"

    이번 마애선정비의 정확한 각석 연대는 미상이지만, 파주학연구소 차문성박사는 “박태보가 신원되고 증직된 1694년 무렵에 지역 사림에 의해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직첩이 돌아온 1689년 당시에는 신원이 이루어지지 않아 ‘牧使’(목사)라는 명칭 사용이 어려웠던 점, 바로 건립할 정치적 여유가 없었던 점 등을 종합하면, 약 6년 후에야 건립 여건이 마련되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또한 일반 선정비와 달리 암벽에 새긴 마애비 형식을 채택한 점에 대해서는 “정치적 부담과 경제적 경비 절감을 고려한 결과로 보인다”며 “석비와는 달리 비전(碑錢) 없이도 제작이 가능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승정원일기>에도 기록… “이 비석이 바로 박태보 거사비”

    이번 마애비 발견은 조선왕조실록의 실기인 <승정원일기 영조 7년 9월 7일자 기록>과도 일치한다. 당시 영조가 능행차 후 의주로 광탄 인근 소주정소에 들렀을 때 길가의 비석을 보고 “이는 누구의 비석인가”라고 묻자, 수행관이 “박태보의 거사비입니다”라고 답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는 이번에 발견된 마애비가 그 거사비일 가능성을 높여주며, 당시 소주정소의 위치가 지금의 광탄천로(파주읍 부곡3리) 인근이라는 점도 뒷받침한다.

     

    파주의 역사, 살아 있는 교육의 장으로”

    파주학연구소 차문성 소장은 “이번 박태보 마애비는 파주에서 유일하게 확인된 마애선정비로, 향토사적 가치는 물론 학술적 가치도 높다”며 “비문의 일부에 붉은 주칠이 남아 있고, 각자 상태도 양호해 보존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박태보, 이세화, 오두인 등 1689 년(기사환국 )절의를 지킨 인물들의 생애 궤적이 파주에 모두 남아 있는 만큼, 이 지역을 역사교육의 장이자 문화관광 콘텐츠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제안했다. 



    “파주의 정신이 깃든 바위”… 보존조치 시급

    현재 마애선정비는 도로 인근 암벽 하단부에 위치해 있어 훼손 위험이 크다. 전문가들은 즉각적인 보호조치와 문화재 등록 추진, 향후 학술적 조사 확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번 마애선정비 발견은 파주가 간직한 정치사, 사림사, 문화사적 맥락을 연결하는 중요한 유물로, 향후 파주시 문화유산 정책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것으로 기대된다.

  • 글쓴날 : [25-08-19 17:59]
    • 지은영 기자[jey20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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