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매매집결지에서 성평등 도시로: 파주 연풍리 전환의 의미
  • 파주시가 최근 연풍리 성매매집결지 일원을 ‘가족센터 등 사회복지시설’로 지정하는 도시계획시설 결정을 고시했다. 이는 단순한 행정 절차가 아니라, 약 70년간 이어진 인권 침해의 역사를 끝내고 도시의 미래 방향을 재설계하는 전환점이다. 성매매집결지 폐쇄와 공간 재구성은 더 이상 구조적 성착취를 용인하지 않겠다는 사회적 선언이며, 파주가 그 실천을 선도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 왜 성매매집결지는 폐쇄되어야 하는가

    성매매집결지 폐쇄는 도시 미관이나 정비 목적이 아니다. 성착취와 인신매매를 차단하려는 국제사회와 국내 법률의 흐름에 부합하는 필수적 조치다. 연풍리는 오랜 세월 인권유린, 성 착취, 빚 강요 등이 구조적으로 반복된 공간이었으며, 여성들은 폭력과 경제적 종속 속에서 자유롭게 이동하거나 구조를 요청하기조차 어려웠다. 이는 ‘개인의 선택’으로 설명할 수 없는 강제성과 착취가 중첩된 구조적 폭력의 전형이다.

    국제사회는 팔레르모 의정서를 통해 성매매를 ‘성적 착취 목적의 인신매매 형태’로 규정하고, 각국 정부에 근절을 위한 적극적 조치를 요구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성매매처벌법」과 「성매매방지법」을 통해 성매매를 명백한 불법행위로 규정하고, 착취 구조를 해체할 국가와 지자체의 책임을 명확히 하고 있다. 파주시는 이러한 기준에 따라 “성매매는 지역사회의 안전과 존엄을 훼손하는 불법행위이며, 이를 종식하는 것은 공공의 책임”이라고 강조해 왔다.

    또한 폐쇄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파주시는 피해 여성의 생계·주거 안정, 심리 회복, 직업훈련을 포함한 자립 지원 체계를 구축해 성매매 종식을 단순한 단속이 아닌 ‘회복과 재출발의 정책’으로 확장하고 있다.

    ■ 도시계획시설 결정의 의미

    연풍리를 가족센터, 성평등광장, 치유정원, 라키비움 등 복합 복지·문화공간으로 조성하려는 도시계획은 과거의 폭력적 역사를 치유하고 시민의 생활문화 공간으로 재탄생시키는 회복적 도시 전략이다. 중장기적으로 시립요양원, 보건지소, 공영주차장, 도서관 등 생활 SOC 확충도 이어질 예정이며, 이는 단순한 재개발을 넘어 ‘성평등·돌봄 중심 도시의 모델’로 재설계하려는 시의 의지를 보여준다.

    연풍리가 이러한 방향으로 전환된다면, 성매매로 인해 훼손된 지역의 가치와 공동체 신뢰가 회복되고, 파주시 전체의 생활환경과 도시 이미지 또한 근본적으로 변화할 것이다. 이는 전국 지자체 중에서도 선도적 접근으로 평가받을 만하다.

    ■ 여행길 걷기와 올빼미 활동: 시민이 만든 변화

    연풍리 전환 과정에서 주목할 점은 시민 참여가 매우 활발했다는 것이다. ‘여행길 걷기 프로그램’은 시민들이 실제 성매매집결지 골목을 걸으며 과거의 현실을 직접 마주하고 기록하는 교육적 활동이다. 성매매 문제를 ‘감추거나 낯선 영역’으로 두지 않고, 시민 스스로 도시의 상처를 이해하고 변화의 필요성을 공감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올빼미 활동’ 역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는 성매매 수요 차단을 목표로 한 야간 시민 감시운동으로, 재유입과 불법 영업을 막는 데 실질적 효과를 거두었다. 성매매는 공급이 아니라 수요가 줄어들 때 감소한다는 점에서 시민의 감시와 의식 변화는 핵심적인 힘이다. 올빼미 활동은 성착취를 둘러싼 ‘사회적 침묵’을 깨고, 지역사회가 스스로 안전을 지켜낸 실천적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 파주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

    연풍리의 전환은 시작에 불과하다. 앞으로 파주가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할 과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 피해 여성의 회복과 자립을 위한 장기적 지원 체계 강화이다. 주거 안정, 심리 치료, 직업훈련 등 실질적 보상과 재출발 지원이 지속돼야 한다.

    둘째, 성평등·돌봄 중심 도시계획의 정착이다. 연풍리가 시민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열린 복합공간으로 재탄생한다면, 이는 파주시 생활문화 전반을 성평등적 방향으로 확장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

    셋째, 지속적인 시민 참여 기반 구축이다. 여행길 걷기와 올빼미 활동처럼 시민이 주체가 되는 프로그램은 도시 전환의 핵심 축이며, 행정과 시민사회가 협력할 때 변화는 비로소 안정적으로 자리 잡는다.

    파주 연풍리의 변화는 단지 한 지역의 정비 사업이 아니다. 우리 사회가 오랫동안 외면해 온 성착취 구조를 직시하고, 그 자리를 시민의 안전과 존엄이 실현되는 공간으로 되돌리는 역사적 과정이다. 파주는 지금 “불법과 단절의 공간을, 성평등과 돌봄의 공간으로 되돌리는 전환”을 시작했다. 이 변화는 파주의 미래를 바꾸는 일일 뿐 아니라, 한국 도시가 나아가야 할 가치와 방향을 제시하는 중요한 이정표가 되고 있다.

  • 글쓴날 : [25-11-30 18:40]
    • 지은영 기자[jey20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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