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주 여성 독립운동가 임명애, 역사 속에서 걸어 나오다
  • ‘파주임명애길’ 정식 공개… 잊힌 항일 여성사 재조명

  • 우리나라 여성 독립운동사의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인 임명애 선생의 삶을 기리는 역사 탐방로 ‘파주임명애길’이 지난 11월 말 시민들에게 정식으로 선보였다. 이번 사업은 경기도여성비전센터가 추진한 ‘경기여성역사탐방로 조성’의 일환으로, 파주와 수원 두 지역에 여성 인물 중심의 역사길을 조성해 지역 문화자원으로 재해석하려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임며애 지사 투옥기록
    ▲임명애 지사 수형기록 
    파주임명애길은 파주시 교하동 일대 약 1km 구간으로 구성돼 있으며, 파주 최초의 만세운동이 일어난 교하초등학교(옛 교하공립보통학교)를 중심으로 교하주재소 터, 교하동행정복지센터, 교하동주민자치센터 등을 잇는다. 각 지점에는 안내판과 설명물이 설치되어 방문객이 자연스럽게 1919년 교하 지역의 항일운동 현장을 따라 걸으며 역사를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교하초등학교 담장에 설치한 안내표시판
    ▲교하초등학교 담장에 설치한 안내표시판 ⓒ사진 하효종 기자
    임명애(1886~1938) 지사는 1919년 3월 10일 교하공립보통학교에서 파주의 첫 만세시위를 이끈 주역이다. 구세군 신자로 활동하던 그는 운동장에 모인 학생들 앞에서 ‘‘조선 독립 만세’’를 선창하며 시위의 불씨를 지폈다. 이후 와석면 시위까지 이어지는 교하 지역 독립운동의 핵심 인물로 활동했다.

    당시 경성지방법원 판결문에 따르면 임명애는 남편 염규호, 학생 김수덕, 농민 김선명 등과 함께 보안법·출판법 위반 혐의로 체포됐다.

    그가 수감된 곳은 서대문형무소 8호 감방으로, 유관순·어윤희·권애라 등 주요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복역하던 장소다. 임명애는 만삭의 몸으로 투옥되었고, 한 달여 만에 출산을 위해 임시 출소했다가 갓난아기와 함께 다시 수감되는 고통을 겪었다. 당시 8호방 여성 독립운동가들은 산모와 영아를 함께 돌보며 서로를 지탱했다. 임명애는 1921년 4월 출소 후 고향으로 돌아왔으나 1938년 세상을 떠났다. 그가 염원하던 조국의 광복은 그의 사후 7년 뒤에 이뤄졌다.

    경기도여성비전센터 관계자는 이번 탐방로 조성 과정에서 "임명애 선생의 생가터 위치를 최초로 확인해 안내판을 설치했고, 함께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됐던 개성 지역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소개하는 현판을 제작해 남북을 잇는 항일 여성사의 의미를 더했다" 라며 소감을 밝혔다

    한편 파주시는 2019년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임명애 지사의 항일정신을 조명하는 창작 뮤지컬을 제작한 바 있다. ‘파주의 유관순’으로 불린 임명애 열사의 삶을 예술적으로 기록하며 시민들에게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됐다.


    교하동 행정복지센터에 설치된 임명애길 현판
    ▲교하동 행정복지센터에 설치된 임명애길 현판 ⓒ사진 하효종 기자
    교하동 주민자치센터 관계자는 “임명애길은 단순한 역사 기념 공간을 넘어, 시민들이 걸으며 배우고 기억하는 살아 있는 역사 교육의 장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으로 경기도여성비전센터와 파주시는 해설 프로그램, 학생 체험 콘텐츠, 탐방 지도 등을 지속적으로 보완해 교하 지역의 항일정신을 더 많은 시민에게 전달할 계획이다.

    파주임명애길은 잊힌 여성 독립운동가의 이름을 현재로 다시 불러내며, 파주가 지닌 항일 역사의 깊이를 새롭게 조명하는 의미 있는 길로 자리매김할 전망이다.

  • 글쓴날 : [25-12-11 17:55]
    • 하효종 기자[hajong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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