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북전단의 시대는 끝났다. 경찰관직무집행법 개정안 국회 통과
  • ‘김여정 하명법’이 아닌, 접경 주민을 지킨 국가의 최소한의 책무
  • “대북전단 시대는 사실상 막을 내렸다.” 통일부의 이 평가는 과장이 아니다. 경찰관이 접경지역에서 대북전단 살포 행위를 현장에서 제지할 수 있도록 한 경찰관직무집행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오랫동안 방치돼 온 위험 행위에 마침내 법의 이름으로 제동이 걸렸기 때문이다.

    이번 개정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 조치가 아니다. 접경지역 주민들의 반복된 불안과 실제 피해를 외면해 온 국가의 공백을 메운, 공권력의 정상화다. 전단이 날아간 뒤 무엇이 돌아오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것은 접경 주민들이었다. 오물풍선, 확성기 소음, 군사적 긴장, 관광 위축과 생계 타격. 이 인과관계는 수차례 반복됐고, 더 이상 ‘우려’가 아니라 현실이었다.

    그럼에도 그동안 경찰은 적극적으로 개입할 법적 근거가 없어 설득과 경고에 머물러야 했다. 위험은 분명했지만, 제지는 불가능했다. 이번 경찰관직무집행법 개정은 바로 이 법의 공백을 메운 조치다. 접경지역에서의 대북전단 살포를 ‘논쟁의 대상’이 아니라 즉각 제지해야 할 위험행위로 분명히 규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국민의힘은 이 법을 두고 ‘김여정 하명법’이라며 반대했고, 3박 4일에 걸친 필리버스터까지 진행했다. 그러나 접경 주민의 불안을 외면한 채 이념 프레임으로만 접근한 주장은 설득력을 얻지 못했다. 통일부는 이번 법 개정에 대해 “남북 간 불신을 조장하고 접경지역의 평화와 안전을 해쳐 온 전단 살포 행위를 어렵게 만드는 계기”라며, “남북 관계 복원과 평화 공존으로 나아가는 단초가 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재명 대통령 취임 초 접경지역 대북확성기 방송 중단을 지시하며 긴장 관리의 방향을 전환했다 평화는 선언이 아니라 선택의 결과임을 보여준 장면
    → 이재명 대통령 취임 초, 접경지역 대북확성기 방송 중단을 지시하며 긴장 관리의 방향을 전환했다. 평화는 선언이 아니라 선택의 결과임을 보여준 장면.
    이제 대북전단 문제는 더 이상 ‘표현의 자유 대 안보’라는 추상적 논쟁의 대상이 아니다. 접경 주민의 생명과 일상, 생존권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국가 개입이라는 점이 분명해졌다.

    이 법 통과를 기점으로, 파주를 비롯한 접경지역에서 이어져 온 또 다른 이야기들이 하나의 맥락으로 연결된다.

    취임 초, 이재명 대통령은 6월 13일 파주시 장단면 통일촌을 방문해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을 공식화했다. 장소는 상징적이었다. 확성기 소음과 군사적 긴장이 일상으로 스며들어 있던 접경의 한복판에서, 대통령은 상호 자극의 악순환을 멈추겠다는 국가의 선택을 분명히 했다.

    이는 수사가 아니라 행정적 결정이었다. 이후 북한의 대남 방송도 멈췄고, 접경의 밤은 오랜만에 고요를 되찾았다. 평화는 선언이 아니라 집행 가능한 선택임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대북전단 문제 역시 같은 맥락에서 다뤄져야 한다는 공감대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형성됐다.

    이어진 접경지역 주민들과의 간담회는 방향을 더욱 분명히 했다. 주민들의 발언은 이념이나 진영의 언어가 아니었다. 밤잠을 설친 이야기, 관광이 끊긴 현실, 아이들이 놀라 깨어나는 일상. 문제는 안보 담론이 아니라 삶의 조건이었다. 이 간담회는 접경 문제가 중앙의 전략 논쟁이 아니라, 주민 생존의 문제임을 국가가 공식적으로 확인한 자리였다.
     대북전단 추가 살포가 예고된 밤 김경일 파주시장이 반바지 차림으로 현장을 지키며 추가 살포를 막아섰다 법이 오기 전 행정이 먼저 책임을 졌다
    → 대북전단 추가 살포가 예고된 밤, 김경일 파주시장이 반바지 차림으로 현장을 지키며 추가 살포를 막아섰다. 법이 오기 전, 행정이 먼저 책임을 졌다.
    그러나 법은 늘 현장보다 늦다. 그 공백을 메운 것이 김경일 파주시장의 행동이었다.

    대북전단 추가 살포가 예고됐던 밤, 김 시장은 반바지 차림으로 현장에 나섰다. 위협적인 언행과 실랑이 속에서도 물러서지 않았고, 결국 추가 살포는 중단됐다. 이 장면은 단순한 일화가 아니다. 법이 도착하지 못한 자리를 지방정부의 책임으로 채운 사례였다.

    그의 행동은 분명한 메시지를 남겼다. 접경의 안전은 중앙정부의 추상적 원칙이 아니라, 지방정부가 매일 감당해야 할 현실이라는 점이다. 이 절박함이 있었기에 입법의 필요성도 더욱 선명해졌다.
     2020년 6월 김순현 북파주발전포럼 대표가 임진각 망배단 앞에서 대북전단 살포 중단을 요구하며 철야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법이 없던 시절 시민의 생존권이 먼저 현장에 섰다
    → 2020년 6월, 김순현 북파주발전포럼 대표가 임진각 망배단 앞에서 대북전단 살포 중단을 요구하며 철야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법이 없던 시절, 시민의 생존권이 먼저 현장에 섰다.
    이 모든 흐름보다 앞선 시간이 있다. 시민이 먼저 움직인 시간이다.

    김순현 북파주발전포럼 대표는 2020년 6월, 임진각 망배단 앞에서 철야를 했다. 비 오는 밤, 보는 이 없어도 피켓을 들었다. “누가 보아주지 않아도 괜찮다”는 그의 기록은 투쟁이 아니라 생활인의 판단이었다. 전단이 날아간 뒤 무엇이 돌아오는지, 그는 파주에서 살아온 시민으로서 알고 있었다.

    금촌 KT사거리 등지에서 이어진 스티커 캠페인과 기록 활동은 일관됐다. “파주는 평화가 경제다.” 이 문장은 구호가 아니라 인과관계의 요약이었다. 전단이 날아가면 긴장이 오고, 긴장이 오면 사람이 떠난다. 김순현의 활동은 이 단순한 현실을 시민의 언어로 설명하는 데 집중돼 있었다.
     금촌 KT사거리에서 대북전단 반대 스티커를 나누는 김순현 대표 파주는 평화가 경제다라는 문장은 접경 주민들의 경험에서 나온 생활의 언어였다
    → 금촌 KT사거리에서 대북전단 반대 스티커를 나누는 김순현 대표. “파주는 평화가 경제다”라는 문장은 접경 주민들의 경험에서 나온 생활의 언어였다.
    그는 법을 요구하기보다, 법이 없을 때 얼마나 위험한지를 먼저 증명했다. 이 시민의 시간이 있었기에 행정과 입법도 뒤따를 수 있었다.

    이 지점에서 묻지 않을 수 없다. 긴장이 커질수록, 누가 이득을 보았는가.

    윤석열 정권 아래에서 대북전단은 점차 위기를 고조시키는 장치가 됐다. 위기는 다시 강경 통치와 계엄 논리의 명분으로 소비됐다. 군 차원의 전단 검토 정황, 민간 위장 의혹, 그리고 끝내 드러난 12·3 계엄 기도는 우연의 연속으로 보기 어렵다.

    윤석열의 정치는 평화를 관리하는 정치가 아니라, 불안을 키워 판을 흔드는 정치였다. 접경은 보호 대상이 아니라, 정권 연장과 영구집권을 노린 도박판의 판돈으로 올려졌다. 판돈은 주민의 불안이었고, 대가는 접경의 일상이었다.

    경찰관직무집행법 개정은 이 위험한 도박에 법으로 마침표를 찍은 결정이다. 대통령의 결단, 국회의 입법, 지방정부의 현장 대응, 시민의 선구적 문제 제기가 하나로 이어진 결과다.

    대북전단이 멈추면, 확성기가 멈추고, 확성기가 멈추면 사람이 돌아온다. 관광과 투자, 일자리는 그 다음이다. 그래서 파주에서 평화는 이상이 아니라 경제 전략이다.

    접경은 더 이상 판돈이 아니다. 정치는 도박이 아니라, 책임이어야 한다.

    대북전단의 시대가 끝났다면, 함께 끝내야 할 것도 분명하다.
    불안을 키워 권력을 연장하려는 정치다.
  • 글쓴날 : [25-12-20 22:10]
    • 내종석 기자[pajuo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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