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종석 파주신문 발행인
용주골의 성급한 ‘홍등(紅燈)’, 공론화의 문을 스스로 닫는가
최근 파주 용주골 성매매집결지에서 벌어진 풍경은 가히 충격적이다. 한밤중 불법 성구매자 차단과 순찰을 위해 나선 시민 활동단 ‘클리어링’의 발길을 업주들이 물리력으로 막아선 것이다. 지난 수년간 매일같이 이어지던 야간 순찰이 이처럼 원천 차단당하고 갈등을 빚은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이러한 용주골의 거칠어진 움직임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전임 시장의 이임과 신임 시장의 취임 사이, 권력의 공백기를 틈타 굳게 닫혔던 업소들에 다시 조명이 켜지고 내부 청소가 시작됐다. 불법 성산업을 이어온 이들이 행정의 감시망이 느슨해진 틈을 정확히 파고든 것이다.
이러한 현상의 배경에는 새로 취임한 손배찬 시장이 후보 시절 내걸었던 “당선 시 성산업 갈등 공론화를 제1호 사업으로 결재하겠다”는 공약이 자리 잡고 있다. 물론 손 시장은 용주골 성매매집결지 폐쇄라는 대전제와 원칙에는 적극 동의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바 있다. 다만 집행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 시민 공청회 등 충분한 의견 수렴을 거치겠다는 포용적이고 민주적인 행정 철학을 피력한 것이었다.
문제는 갈등을 대화로 풀고자 했던 손 시장의 이러한 포용 정신이, 현장에서 전혀 다른 방향으로 왜곡되어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점이다. 업주들은 상생과 소통을 강조한 신임 시장의 약속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아전인수(我田引水)격으로 해석하며, 마치 불법 영업을 다시 해도 좋다는 면죄부나 정책 후퇴의 신호로 오판한 모양새다.
물론 대화와 타협, 시민 공청회를 통한 의견 수렴은 민주주의 행정에서 미덕으로 꼽힌다. 그러나 이미 불법으로 규정되어 수년간 폐쇄 절차를 밟아온 범죄지대를 두고 새삼스럽게 ‘갈등 공론화’를 논하는 것은 본질을 흐릴 수 있다는 주변의 우려가 깊다. 자칫 단호해야 할 법 집행이 이익집단 간의 ‘이해관계 조정’ 수준으로 격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우려는 현실이 되어 업주들에게 "버티면 이긴다", "정권이 바뀌니 정책도 바뀐다"는 잘못된 신호(Signal)로 작용하고 있다. 수년 동안 행정과 시민사회, 경찰이 뜻을 모아 쌓아 올린 폐쇄 성과가 단숨에 오리무증(五里霧中)의 안개 속으로 사라질 판이다. 방향타를 잡은 선장이 ‘공론화’라는 이름 아래 사공들을 다시 불러 모으는 사이, 용주골 폐쇄라는 배는 침몰하거나 엉뚱한 곳으로 표류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결국 업주들의 이러한 성급한 도발은 자신들의 숨통을 틔워줄 줄 알았던 손 시장의 정치적 입지를 오히려 벼랑 끝으로 내모는 자충수가 되고 있다. 합의와 대화의 장이 마련되기도 전에 불법 홍등을 먼저 밝히고 시민들의 발을 막아선 것은 엄연한 초법적 집단 이기주의다. 이는 파주시민들에게 극심한 반발심만 심어줄 뿐이며, 행정이 불법 행위와 타협하려 한다는 거센 비판을 자초해 손 시장이 취지를 살려 추진하려던 '공론화의 장' 그 자체를 시작도 하기 전에 폭파하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업주들이 스스로 대화의 문을 닫아걸어 버린 셈이다.
이 참담한 퇴보의 현장을 바라보며, 성매매집결지 완전 폐쇄를 제1호 결재로 선포했던 김경일 전 파주시장은 퇴임 직후 SNS를 통해 감출 수 없는 회한을 드러냈다. 그는 "완전 폐쇄를 목전에 두었는데 다시 재개되는 움직임에 억장이 무너진다"며 "인권을 위해,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불법 행위는 반드시 없어져야 하니 경찰과 행정도 제 역할을 다해달라"고 간곡히 호소했다. 전임 시장의 이 뼈아픈 목소리는 지금 파주시가 마주한 경고등과 같다.
법치와 인권의 가치는 타협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손 시장의 포용적인 소통 행정이 빛을 발하기 위해서라도, 불법에 대해서는 엄정 선을 긋는 단호함이 선행되어야 한다. 현 상황에서 경찰과 파주시가 즉각적이고 일관된 단속으로 사태를 바로잡지 않는다면, 공론화라는 미명은 불법 성산업의 부활을 방조했다는 오명으로 돌아올 것이다. 용주골 업주들은 자신들이 켠 조명이 대화의 문을 여는 불빛이 아니라, 상생을 논할 마지막 기회마저 태워버리는 불씨가 되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