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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전자 전문 검사 기관에 서류를 작성하고 있다. 개인정보를 위해 샘플인용 ⓒ하효종 기자 |
네덜란드로 입양된 해외입양인 신윤복 씨(현지명 Yoen de Loors·1973년생)의 친모 찾기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지난 4월 파주신문이 신 씨의 친모 찾기 과정을 두 차례 보도한 이후, 파주 조리읍 봉일천에 게시된 가족 찾기 현수막을 본 시민이 “00씨가 엄마일 가능성이 있다”며 파주신문에 제보해 오면서 새로운 가족 찾기의 단서가 마련됐다.
신 씨는 그동안 파주경찰서를 통해 ‘헤어진 가족 찾기’를 신청하고 관련 절차를 진행해 왔지만, 아직 유전자 검사와 관련한 별도의 연락을 받지 못한 상황이었다.
이 과정에서 파주신문은 경찰을 통한 공식적인 가족 찾기 절차와 별도로 취재를 이어가던 중 뜻밖의 제보를 받았다.
제보자는 경기도 남부지역에 거주하는 여성으로, 파주 봉일천에 걸린 신 씨의 가족 찾기 현수막 내용을 보고 지인에게 연락을 받았다는 제보였다. 자신의 친척이 이와 관련된 이야기일 가능성을 제기하며 파주신문에 연락해 왔다.
해당 현수막은 파주 조리읍 상인회장인 김훈민 씨가 신 씨의 사연을 접하고 가족 찾기에 도움을 주기 위해 게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파주신문은 수차례의 연락끝에 제보 내용을 토대로 여러 경로를 통해 사실관계를 확인했고, 신 씨에게도 이 같은 새로운 가능성을 전달했다.
해외에서 시작된 유전자 검사
공식적인 가족 찾기 절차만으로는 확인에 시간이 걸릴 수 있다고 판단한 파주신문은 신 씨와 협의해 사설 유전자검사기관을 통한 확인 방법을 알아봤다.
신 씨는 네덜란드 현지에서 유전자 검사를 신청했고, 검사를 위한 유전자 감식체가 최근 서울에 도착하면서 양측의 유전자 비교를 위한 절차가 시작됐다.
이어 파주신문은 친모로 추정되는 인물의 유전자 검체 확보를 위해 취재단을 구성하고 2일 경기 남부지역을 직접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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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주신문 취재단이 지켜보는 가운데 친모로 추정되는 여성이 유전자 검사를 위해 모발을 채취하고 있다. 이날 채취한 검체는 유전자검사기관에 의뢰됐다. ⓒ하효종 기자 |
취재진은 현장에서 당사자의 동의를 받아 모발과 구강상피세포를 채취했으며, 이날 유전자검사기관에 검사를 의뢰했다.
이제 신 씨가 네덜란드에서 제출한 검체와 이날 확보한 검체의 비교 분석을 통해 친모 여부를 확인하는 일만 남았다.
현재로서는 해당 여성이 신 씨의 친모인지 단정할 수 없다.
“너무 오래돼서 감정이 없다”
취재진이 현장에서 만난 친모 추정 여성은 예상보다 담담한 모습이었다.
오랜 세월이 흐른 탓인지 자신의 감정에 대해서는 “너무 오래돼서 감정이 없다”는 취지로 이야기했다. 하지만 말투와 표정에서는 긴장감도 엿보였다.
하지만 제보자인 친적은 다른 반응을 보였다.
친척들은 파주신문이 제공한 신씨의 사진에서 "엄마의 모습이 보이는것 같다" 며 “신 씨가 오랜 시간 어머니를 찾고 있다면 우리가 협조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유전자 검사에 응할 것을 권유했고, 결국 당사자의 동의가 이뤄지면서 이날 유전자 검체를 채취할 수 있었다.
수십 년 동안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두 사람 사이에 유전자라는 과학적 방법을 통해 가족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한 장의 현수막, 한 통의 전화가 만든 기적
이번 만남의 출발점은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파주 조리읍 봉일천에 걸린 한 장의 현수막이었다.
김훈민 조리읍 상인회장이 신 씨의 가족 찾기를 돕기 위해 게시한 현수막을 우연히 본 제보자가 자신의 가족과 관련된 가능성을 발견했고, 파주신문에 전화를 걸어오면서 이야기가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파주신문의 취재가 시민의 관심으로 이어지고, 다시 시민의 제보가 새로운 취재로 연결되면서 결국 경기 남부에 거주하는 친모 추정 인물을 직접 만나는 데까지 이어졌다.
아직 유전자 검사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적어도 신 씨에게는 수십 년 동안 막연하게만 존재했던 ‘엄마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는 구체적인 기회가 마련됐다.
전쟁이 남긴 상처, 그리고 아직 끝나지 않은 가족 이야기
이번 가족 찾기는 한 개인의 사연을 넘어 한국 현대사의 아픈 흔적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한국전쟁 이후 미군이 한국에 주둔하면서 미군과 한국인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생겨났고, 당시의 사회적 편견과 경제적 어려움 등으로 상당수의 아이들이 가족과 떨어져 해외로 입양됐다.
아이를 떠나보내야 했던 여성들의 삶도, 자신의 뿌리를 알지 못한 채 낯선 나라에서 성장해야 했던 입양인들의 삶도 오랜 세월 역사 뒤편에 묻혀 있었다.
네덜란드에서 성장한 신윤복 씨 역시 자신의 출생과 가족에 대한 기억을 찾기 위해 오랜 시간을 돌아 다시 한국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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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3년전인 1973년 입양당시 서류(본적과 주소는 입양기관으로 추정된다) ⓒ하효종 기자 |
그가 찾고 있는 것은 단순히 한 사람의 어머니가 아니다.
‘나는 어디에서 태어났는가’, ‘왜 가족과 헤어져야 했는가’, ‘나를 낳아준 어머니는 어떤 삶을 살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번 유전자 검사는 친모로 추정되는 여성에게도 지나간 과거와 마주하는 일이 될 수 있다.
전쟁과 가난, 사회적 편견이라는 시대의 굴레 속에서 헤어졌던 가족이 수십 년의 시간을 넘어 다시 연결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한 장의 현수막에서 시작된 한 통의 제보. 그리고 그 제보를 따라 찾아간 한 사람.
이제 마지막 확인 절차가 남았다.
유전자 검사 결과가 두 사람을 ‘엄마와 딸’로 연결할 수 있을지, 결과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파주신문은 검사 결과가 확인되는 대로 신윤복 씨의 가족 찾기 과정과 그 결과를 후속 보도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