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자 탄신 2577주년 추기 석전대제가 열린 7일 교하향교 대성전 앞에서 제관과 유림, 내빈들이 봉행을 마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전통 제복을 갖춰 입은 제관들의 모습에서 오랜 세월 이어져 온 향교 제례문화의 격조를 엿볼 수 있다.
619년 이어온 ‘예(禮)와 학문의 전당’…전통문화 계승·인성교육 가치 되새겨
공자를 비롯한 유교 성현의 학덕을 기리고 예와 학문의 정신을 되새기는 2026년 추기 석전대제(釋奠大祭)가 600년 역사를 품은 교하향교에서 엄숙하게 봉행됐다.
파주 교하향교(전교 이필하)는 지난 7일 오전 10시 파주시 금촌동 교하향교 대성전에서 공자 탄신 2577주년 추기 석전대제를 봉행했다.
파주시가 후원하고 교하향교가 주관한 이날 행사에는 지역 유림과 기관·단체 관계자, 시민 등이 참석해 공자를 비롯한 선현들의 학덕을 기리고 우리 전통문화가 지닌 정신적 가치를 되새겼다.
대성전 앞에는 전통 제복을 갖춰 입은 제관들이 정해진 위치에 자리했고, 집례가 부르는 홀기(笏記)에 따라 제례가 차분하게 이어졌다. 수백 년 동안 전승돼 온 전통 의례가 그대로 재현되면서 교하향교 경내에는 시종 경건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석전대제는 공자를 비롯한 유교 성현에게 제향을 올리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전통 제례다. 성균관과 전국 향교에서는 매년 봄과 가을 두 차례 석전을 봉행하며 선현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고 있다.
이필하 전교 “인의 정신 되새기는 배움의 터 만들겠다”
석전 봉행에 앞서 열린 1부 행사는 정호진 교하향교 유도회장의 사회로 진행됐다.
국민의례와 내빈 소개에 이어 이필하 전교의 인사말, 손배찬 파주시장과 박재홍 파주문화원장의 축사가 이어졌다.
이날 행사에는 교하향교 원로 고문인 정경진·유해균·우관제·강돈희 고문을 비롯해 손배찬 파주시장, 박재홍 파주문화원장, 김윤정 파주시 문화교육국장 등이 참석했다.
또 이기철 파주향교 전교, 정붕채 적성향교 유도회장, 문천기 용주서원 원장, 김용원 파산서원 원장, 유재숙 신사임당 추모선양회 회장, 강민희 전임 유도회장 등 지역 유림과 전통문화계 인사들도 자리를 함께했다.
이필하 전교는 “공자 탄신 2577년 석전대제에 함께해 주신 내빈과 유림 여러분께 감사드린다”며 “교하향교가 공자님의 인의(仁義) 정신을 되새기고 전통문화를 보존하며,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참된 인간성을 찾을 수 있는 배움과 안식의 공간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석전대제를 준비한 유림들에게 감사를 전하고, 초헌관을 맡은 손배찬 시장을 비롯한 참석자들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했다.
▲ 교하향교 대성전에서 열린 추기 석전대제에서 제관들이 집례의 홀기에 따라 경건하게 예를 올리고 있다. 이날 대제는 전폐례와 초헌례, 아헌례, 종헌례 등을 전통 예법에 따라 엄숙하게 봉행했다.
손배찬 시장 초헌관…“향교·서원, 지역 정신문화의 중심”
손배찬 파주시장은 축사를 통해 “교하향교 추기 석전대제 봉행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전통을 지켜온 이필하 전교와 유림 여러분께 감사드린다”며 “초헌관의 중책을 맡게 된 것을 큰 영광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향교와 서원이 단순한 옛 문화유산에 머무르지 않고 지역의 정신문화와 인성교육을 이어가는 공간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파주시도 전통문화 보존과 계승에 함께 노력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박재홍 파주문화원장도 “석전대제는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예와 정성을 다해 전통을 다음 세대로 이어가는 소중한 문화유산”이라며 전통문화의 보존과 현대적 계승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박 원장은 지역 유교문화유산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함께 신곡서원 복원을 위한 유림사회와 파주시의 협력도 당부했다.
전폐례부터 망예례까지…전통 예법 따라 엄숙히 봉행
이어진 2부 석전대제는 오랜 세월 전승돼 온 홀기와 제례 예법에 따라 엄숙하게 진행됐다.
이날 초헌관(初獻官)은 손배찬 파주시장, 아헌관(亞獻官)은 신기호 수석장의, 종헌관(終獻官)은 정찬형 장의가 맡았다.
초헌관은 첫 번째 술잔을 올렸으며, 아헌관과 종헌관은 각각 두 번째와 세 번째 술잔을 올려 선현에 대한 공경의 뜻을 표했다.
전체 의식은 서교송 장의가 집례를 맡아 홀기를 창홀했으며, 정헌식 장의가 대축을 맡아 축문을 낭독했다.
또 알자 정재진, 봉향 이광희, 봉로 오한석, 내봉작 신동주, 외봉작 권순태, 전작 노보배, 사준 송경화, 사세 한순임 등 여러 집사가 각자의 소임을 맡아 제례를 진행했다.
석전은 취위(就位), 전폐례, 초헌례, 아헌례, 종헌례, 분헌례, 음복수조례, 철변두, 망예례 등의 순으로 이어졌다.
제관들이 절을 올리고 술잔과 폐백을 올리는 각각의 절차에는 선현을 공경하고 학문과 덕행을 본받으며, 예와 도리의 가치를 오늘의 삶 속에서 되새기려는 뜻이 담겼다.
1407년 창건…619년 역사 간직한 교하향교
교하향교는 조선 태종 7년인 1407년 탄현면 갈현리에 창건됐으며, 영조 7년인 1731년 장릉의 능역 조성에 따라 현재의 파주시 쇠재로 91 금촌동으로 이전했다.
조선시대에는 지방의 관립 교육기관으로 유생들에게 유학을 가르치는 한편 공자를 비롯한 유교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제향을 올리는 문묘의 기능도 담당했다.
건축 배치는 전형적인 전학후묘(前學後廟) 형식이다.
앞쪽에는 교육공간인 명륜당과 유생들의 생활공간인 동재·서재가 자리하고 있으며, 내삼문을 지나 뒤편으로 올라가면 제향공간인 대성전과 동무·서무가 배치돼 있다.
교육공간을 앞에 두고 제향공간을 뒤에 둔 구조는 학문과 예를 함께 중시했던 조선시대 향교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대성전에는 공자를 비롯한 안자·증자·자사자·맹자의 오성(五聖), 정호와 주희 등 송조 2현, 설총·최치원·안향·정몽주·김굉필·정여창·조광조·이언적·이황·김인후·이이·성혼·김장생·조헌·김집·송시열·송준길·박세채 등 우리나라 18현을 포함해 모두 25위의 위패가 봉안돼 있다.
일제강점기 폐쇄 아픔 딛고 광복 후 복구
교하향교 역시 근현대사의 굴곡을 겪었다.
일제강점기인 1943년 파주향교를 제외한 파주군 내 향교들과 함께 폐쇄됐으나, 광복 이후인 1946년 지역 유림들의 노력으로 복구됐다.
이후 매년 춘기와 추기 석전대제를 봉행하며 지역의 정신문화와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현재 파주지역에는 교하향교와 파주향교, 적성향교가 남아 있다. 과거 장단지역에도 장단향교가 있었으나 한국전쟁 과정에서 소실됐으며, 민간인통제선 안에 위치해 현재까지 복구되지 못한 상태다.
교하향교는 제향 기능에 머물지 않고 전통문화 교육의 장으로도 역할을 넓히고 있다.
올해 6월부터 8월까지는 문화체육관광부 후원, 성균관 유교문화활성화사업단 주관의 유교아카데미를 운영하며 시민들에게 유교사상과 전통문화, 인문학적 가치를 알리는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전통은 ‘보존’ 넘어 ‘참여’로 이어진다
석전대제의 의미는 오래된 의례를 단순히 재현하는 데만 있지 않다.
누군가는 홀기를 읽고, 누군가는 향을 들며, 또 누군가는 술잔을 올린다. 제례를 준비하는 이들과 그 의미를 다음 세대에 가르치는 이들의 참여가 더해질 때 수백 년의 전통은 비로소 현재의 문화가 된다.
이날 교하향교에서 봉행된 추기 석전대제 역시 예(禮)와 학문, 인간다운 삶이라는 선현들의 가르침을 오늘의 지역사회 속에서 다시 되살리는 자리였다.
급격한 사회 변화와 세대 간 단절이 새로운 과제로 떠오르는 시대, 향교가 품어온 ‘배우고 익히며 사람됨을 먼저 생각한다’는 정신은 오히려 오늘날 더욱 깊이 되새겨볼 가치가 있다.
619년의 시간을 이어온 교하향교 대성전 앞에서 올린 한 잔의 술과 한 번의 절은 그래서 단순한 옛 의식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전통은 오래됐다는 이유만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 뜻을 이해하고 직접 참여할 때 비로소 다음 세대의 문화가 된다.
교하향교가 앞으로도 파주의 정신문화와 인성교육을 이끄는 열린 배움터로 자리하고, 석전대제를 비롯한 소중한 전통문화가 세대를 넘어 오래도록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내종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