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육체의 소멸이 아닌, 명예와 신념이 디지털 공론장에서 사회적으로 매장되는 과정을 상징한다.
그는 누구도 미워하지 않았다. 다만 헌법 앞에, 양심 앞에 거짓으로 설 수 없었다.
2024년 12월 3일, 대한민국의 헌정질서가 흔들렸다. 계엄령이 선포되고 국회 앞에는 장갑차가 배치되었다. 민주주의의 최후 보루를 지키기 위한 시민들의 발걸음이 여의도로 향했다.
그날 그 현장에는 파주시청 전직 별정직 공무원이었던 김혜원 씨도 있었다.
김 씨는 오마이TV에서 당시의 긴박했던 순간을 증언한 이후, 뉴스공장과 매불쇼 등 여러 언론에 노출되며 그의 행동이 전파를 탔다.
“공무원 신분이었지만 정치적 중립보다 헌법 수호가 먼저였다”, “내란 상황에서 시민으로서 국회를 지키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 “장갑차를 막기 위해 현장에 있었다”는 그의 말은 SNS와 지역사회, 그리고 전국 곳곳에 빠르게 확산되었다.
그의 용기와 소신은 많은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남겼다.
하지만 최근 일부 언론과 SNS상에서는 김 씨의 행동과 경력에 대한 왜곡과 비난이 도를 넘고 있다.
“장갑차 근처에도 없었다”, “정규직도 아닌데 공무원 코스프레를 한다”, “시장 재선을 위한 가짜 의인극이다”라는 식의 주장이 여과 없이 유포되고, 일부는 법적 대응이 필요한 수준의 허위사실로 번지고 있다.
급기야, 김 씨가 자신의 억울함을 담은 SNS 상의 어눌한 표현 하나마저 고소 대상으로 지목되었고, 이에 맞고소에 나서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양심의 호소가 조롱의 대상이 되고, 침묵하지 않은 자가 공격받는 세상. 이 사태를 단순한 논쟁이나 정치적 해프닝으로 치부할 수 있을까?
‘살처구장(殺妻求將)’이라는 고사가 있다.
중국 삼국시대, 조조가 장수를 얻기 위해 자신의 아내를 희생시켰다는 이야기다.
이 고사는 오늘날 우리에게 이렇게 묻는다.
“자당(自當)의 동지를 희생양 삼아 무엇을 얻으려는가?”
지금 우리 사회는 ‘팩트’라는 이름 아래 동지를 희생양으로 삼는 ‘현대판 살처구장’을 반복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특히 파주 지역 정치권은 이 질문 앞에 겸허하게 서야 한다.
침묵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내부에서부터 조롱당하고 고립되는 현실을 외면한다면, 우리가 지키려 했던 민주주의의 이름은 과연 무엇이었는가?
12월 3일의 상황은 단순한 정당 지지나 선거운동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헌법 파괴를 목적으로 한 명명백백한 내란, 김혜원 씨의 행동은 특정 정당을 위한 정치적 퍼포먼스가 아니라, 헌정질서 수호를 위한 시민의 저항이었다.
그가 장갑차에 손을 댔는지, 몇 미터 떨어져 있었는지는 본질이 아니다.
그날 그 자리에 있었다는 사실.
공무원 신분으로 부당한 권력 앞에 양심의 무게를 선택했다는 사실.
그것이 곧 증언이고 기록이다.
오늘날 디지털 공간은 익명성과 정치적 편향성 속에서 한 개인을 “살(殺)”하는 데 망설이지 않는다.
양심에 따른 행동은 조롱의 대상이 되고, 진실을 말한 이들은 ‘정치적 중립 위반’이라는 낙인을 뒤집어쓴다.
특히 같은 당 소속의 평범한 당원이 ‘내란의 밤’ 여의도로 달려간 행동을 두고, 일부 자당(自當)의 네티즌들이 비아냥 섞인 댓글로 그 의지를 깎아내리는 행위는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인가?
진실을 찾기 위한 비판인가, 아니면 정치적 생존을 위한 희생양 만들기인가?
우리는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이라는 개념을 다시 되짚어야 한다.
그것은 정당이나 후보를 위한 선거운동을 하지 말라는 것이지, 불의한 국가폭력에 침묵하라는 명령이 아니다.
공무원이 시민으로서 헌법과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것은, 결코 금기시되어서는 안 된다.
김 씨는 별정직이었다. 그러나 별정직도 「지방공무원법」에 따라 임용된 공무원이며, 정치적 중립의 의무를 지닌다.
오히려 정무직과 별정직 공무원은 시민과 권력의 접점에서 누구보다 민감하게 공직윤리와 국민적 책무를 고민해야 하는 위치에 있다.
그는 선거운동을 한 적도, 정치인의 캠프에 참여한 적도 없다.
그저, 헌정질서가 무너지는 현장을 보고 “이건 아니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던 한 사람의 공직자였다.
우리는 12.3 사태 당시 국회 앞에서 벌어진 일을 기록하기에 앞서,
먼저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의 용기와 윤리를 돌아보아야 한다.
그날 12.3 사태가 실패로 끝날 수 있었던 이유는 국민들의 저항뿐 아니라 수많은 공직자들의 ‘부당한 명령 거부’가 있었기 때문이다. 계엄해제 의결에 참여했던 일부 국민의힘 국회의원들의 선택 역시 그런 맥락에서 재조명돼야 한다.
국회 안에서는 국회 사무처 직원들이 계엄군 진입을 막아섰고, 언론사 기자들은 밤을 새우며 국회를 지켰다. 일부 군인들조차 상부 명령을 따르지 않고 버텼다.
김혜원 씨도 그 중 하나였다. 그는 침묵하지 않았고, 회피하지 않았다.
그날, 당신은 어디에 있었는가.
그날, 당신은 어떤 시민이었는가.
김혜원 씨는 그날 침묵을 거부했다.
그는 ‘공무원’이기 이전에 ‘시민’이었고, ‘시민’이기 이전에 ‘양심’이었다.
그 선택은 조롱이나 비난의 대상이 아니라,
기록되어야 할 진실이며, 존중받아야 할 용기다.
그리고 지금, 우리 사회와 언론은 이 질문에 응답해야 한다.
진실은 누구에게 말할 기회를 주고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지금, 누구의 침묵을 강요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