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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



늙음에서2

-노인과 바다

 

시인 장종국

 

늙음을 논한다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은 일이다. 이유는 딱 한가지로 단정 짓고 싶다. 나는 당연히 늙었다는 것을 인장하면서도, 한 편으로 인정하려들지 않기 때문이다.

헤밍웨이의 단편소설 <노인과 바다>를 네 번째 읽었다. 첫 번째가 중학교 시절, 두 번째가 고등학교 시절, 세 번째가 청년 시절이었다. 그저 소설 흥미보다 치열한 긴장감이 좋아서 읽었는데, 네 번째 읽기는, 노인이 되어서 읽었을 때 비로소 <노인>이 바로 <>라는 것을 알았다. 바다는 살아온 세월이라는 것을. 늙은 어부가 바다에서 고기를 낚는 모습으로부터 좌절, 그 꿈을 묘사하면서 자연과의 싸움에서 굴복하지 않는 당당한 인간상을 그려낸 작품이다.

 

쿠바의 늙은 어부 산티아고는 84일 동안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한다. 그러자 사람들은 그의 운이 다했다고 여긴다. 그를 따라다니며 고기를 잡던 마놀린이라는 소년이 있는데, 이렇게 고기를 잡지 못하게 되자 소년의 부모는 소년이 다른 배를 타게끔 한다.

 

83일째, 노인은 혼자 바다 멀리 나가 6.3미터나 되는 물고기를 낚는다. 이틀 동안 혼신의 힘을 다한 싸움 끝에 드디어 대어를 작살로 찍어 배 옆구리에 매달고 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피 냄새를 맡고 상어가 나타나서 물고기를 뜯어먹는다. 노인은 칼로 상어를 죽인다. 그런데 또 상어들이 나타나 물고기를 노린다. 물고기를 노리는 상어와 노인의 처절한 싸움, 결국 항구에 도달했을 때 물고기는 상어에게 다 뜯어 먹히고 머리와 뼈만 남아 있었다.

 

줄거리는 아주 단순하고 간단한 이야기로 전개된다. 그런데 독자들은 그토록 소설을 극찬 했을까?

이처럼 작품에서 자연과 맞서 싸우는 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 자연은 바다이다. 바다는 인간의 생명을 유지시켜 주는 물고기를 준다. 하지만 여기에 공짜로 얻어지는 게 아니라 도전과 모험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문학작품의 서두에는 작품의 주제를 암시하는 실마리가 담겨 있기도 한다.

우선 노인과 노인이 지닌 모든 것들이, 낡고, 늙은 것이라는 걸 알게 된다. 하지만 이런 겉모양에도 불구하고 노인의 눈은 명랑하고 생기가 감돌고 있다. 자연과의 싸움에서 늘 이긴다는 투지력과 끈질긴 인내심으로 도전한다. 최악의 경우 패배할 수도 있지만 포기하지 않고 싸우는 것, 이런 모습을 작가는 극찬하고 있는 것이다.

 

84일이나 고기 한 마리 못 잡았지만, 노인은 스스로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운이 없어 못 잡았을 뿐 솜씨가 없어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노인을 좋아하는 소년도 또한 그렇게 믿는다. 이러한 자기의 신뢰 자신감을 겉으로는 불행에 빠져 있는 것처럼 보이는 노인을 생기 있게 만든다.

83일째 되는 날, 노인은 멀리 바다 한가운데로 나와서 고기 한 마리를 낚게 된다. 하지만 이 고기는 너무나도 거대해서 노인의 혼자 힘으로는 온 힘을 다해 싸워야 할 대상이다. 아무도 없는 망망대해 거기에서 아주 거대한 고기와 맞붙어 싸우는 이틀간의 과정이 이 작품의 근간을 이룬다. 이렇게 치열하게 싸우면서도 고기에 대한 친근감을 갖고 있는 게 퍽 흥미로운 장면의 작품 속으로 한번 들어가 보자.

 

이놈아.”하고 노인은 고기를 향해 큰 소리로, 그러나 다정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나는 죽을 때까지 너와 함께 있을 테다.” 저놈도 나하고 끝까지 싸우겠지. 하고 노인은 생각했다.

이제 좀 어떻지?” 노인은 왼손을 보고 말했다. 왼손은 죽은 사람의 손처럼 뻣뻣했다.

난 너를 위해 좀 더 먹어 둘 테다.”

물속의 고기 놈한테도 먹을 것을 좀 줬으면 좋겠는데, 하고 노인은 생각했다. 저놈은 나와 형제 사이니까, 하지만 나는 저놈을 꼭 죽여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나는 힘을 가져야만 하니까.

노인은 천천히 그리고 열심히 쐐기 모양의 생선 조각을 하나하나 먹었다.

노인은 쥐가 난 왼손을 바지에다 문지르면서 손가락을 펴보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손가락은 펴질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태양이 떠오르면 손가락도 펴지겠지, 하고 노인은 생각했다. 아마도 조금 전에 먹은 다랑어고기가 위장 속에서 소화가 될 무렵에는 펴지겠지. 만일 기어코 왼손을 써야 할 때가 온다면 나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펴야할 것이다. 그러니 지금 이것을 억지로 펼 생각은 없다. 저절로 펴져서 보통대로 돌아가게 내버려둬야지. 결국 나는 간밤에 너무 혹사를 한 셈이다. 하지만 그때는 두 손을 자유로이 움직여서 많은 줄을 이어야 할 필요가 있겠지.

 

온몸과 마음이 피로할 대로 피로한 순간에도 노인은 물고기를 형제라 생각한다. 생존투쟁에서 노인과 고기는 맞수지만, 모든 생물의 어머니인 자연 속에서는 모두가 하나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헤밍웨이의 문체를 흔히 '하드보일드(hard boiled)하다고 말한다. 딱딱하고 강건한 문체라는 것이다. <노인과 바다>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상황 묘사와 노인의 생각들이 씨줄과 날줄처럼 짜여 있는데, 그 속에는 작은 감상도 들어 있지 않다. 가끔 너무 힘이 들 때, 노인은 소년이 함께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말벗도 되고 도울 수도 있었을 테니까.

 

그토록 생사를 건 싸움을 하면서 노인은 빈털터리로 되돌아오게 된다. 밧줄과 작살, , 키의 손잡이를 잃고 죽은 뜻한 피로와 함께 되돌아 온 것이다.

<노인과 바다>에서 작가 헤밍웨이가 말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바다와 노인의 관계이다. 노인은 바다에 친구가 있고, 적도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살기 위해서 바다로 나가야하고 싸워야한다. 헤밍웨이는 결과보다는, 지칠 줄 모르고 바다와 맞서 싸우는 노인의 용기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작품의 마지막 꿈꾸는 장면으로 책장을 덮는다.

헤밍웨이는 인간은 패배하려고 태어나지 않았지. 인간은 파괴될 수 있을지언정 패배할 수는 없어.”라며 일갈했다.

 

오막살이에는 노인이 아직도 잠자고 있었다. 노인은 엎드린 채 잠들어 있었으며, 소년은 옆에서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노인은 사자의 꿈을 꾸고 있었다.’

 


 


 

 

 

 

 

 


  • 글쓴날 : [2021-05-05 23: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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